피나클

피나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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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까지 ‘피나클’의 능력을 가진 자는 밝혀진 바로 딱 하나뿐이다. 다만 그 상대가 움직일 만큼 연극극단 레디쉬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는 점이 석연찮았다. 사회에서도 힘이 없는, 단순히 대가족 단위의 하급 피나클로 이루어진 연극극단의 표면 위로 그가 모습을 드러낸다는 건 추측조차도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거기다, 초반에 비해 급격히 거세진 매니저의 힘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 중 하나였다. 그런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얼마나 끔찍했는지. 뿌옇던 먼지가 가라앉은 직후 피나클은 자신의 발을 붙잡는 존재가 두려움임을 알았다. 온화하기만 하던 피나클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피나클의 팔을 붙잡은 피나클의 손은 온통 피로 물들었다. 붉은 핏줄기가 바닥으로 번져갈수록 피나클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가는 감각에 몸서리쳤다. 피나클은 결국 주먹을 쥔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한 번, 두 번, 세 번, 계속해서 쥐어박기만 하던 피나클은 속으로만 울부짖었다. 자신의 용납 되지 않는 나약함을 저주하면서.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천재라면 달라야하는 거잖아. 억지로 잠재운 뇌를 깨우려 폭언을 퍼부었다. 형들을 도와야지. 유일하게 남은 내 가족이잖아. 네가 그렇게 잘났다면, 그렇게 뛰어나다면 대책 정도는 생각할 줄 알아야하는 거 아니야. 쓸모없는 천재, 번번이 실패하는 실험체. 그런 수식어에 지쳐 스스로 외면했던 천재성은 상처를 주는 폭언에도 깨어나지 않았다. 미지근해진 피나클의 표면을 느끼며 피나클이 쓰게 웃었다.

계속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해봤는데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씁쓸한 혀끝을 탄산으로 적신 피나클이 운동화 끝에 걸린 자갈을 쳐냈다. 간만에 제복이 아닌 티셔츠를 걸친 피나클은 제 나이의 또래들과 다름없어 보였다. 일자로 자른 앞머리가 바람으로 인해 흐트러졌다. 루한은 말없이 피나클의 머리를 툭툭 쳤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정부의 밑에서 힘든 생활을 보냈던 피나클은 나이에 비해 등에 짊어진 무게가 과했다.

루한이 언젠가 단체 훈련을 마치고 피나클과 둘만 남게 된 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내던 피나클은 붉게 달아오른 뺨을 움직이며 말했었다. 사실, 평범하게 살고 싶었어요. 총 같은 건 평생 잡아볼 일 없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어요. 스나이퍼는 그의 천성이지만 반대로 그의 숨통을 조이는 명칭이었다. 이번 일로 자책하지 말아야 할 텐데. 루한이 방울 하나 남지 않은 알루미늄 캔을 피나클로 구겼다.